먼저, 죄송한 마음이 가장 앞섭니다.
많은 분들이 뜻을 모아주셨는데 뭐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이대로 손을 놓아버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현명했었더라면 도움이 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갈 때는 조용히 가는 것이 맞는 줄 알지만 제가 제안했었던 것도 있고, 또 그동안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 했던 분들께 인사라도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글을 남깁니다.
힘들게 올린 제니님글에 제 씁쓸한 마음을 답글로 달았었습니다. 저는 만나뵌적은 없지만 글만으로도 제니님, 단비님이 고운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의도적으로 남을 모함하고 거짓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곱고 바르게 살아온 분들은 아픔에 대한 면역력이 약할수가 있습니다. 해서, 자신의 상처가 너무 커서 그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둘러 볼 여유가 없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안타까웠던 것 뿐이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마음이 괜찮아지고 나면 제 3자의 시선으로 다시 이 사건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애니님의 팬이 아닙니다. 애니님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애니님에게 가해진, 그리고 가해질 무차별적인 공격을 조금이라도 막아드리고 싶었습니다. 1을 잘못한 사람에게 10의 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니까요. 궁지에 몰린 사람은 평소처럼 행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내가 실수하며 사는 것 처럼 남들도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처럼 '그랬다더라'가 '그랬다'로 되어가는 상황을 막고 싶었으니까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김규항 자칭팬과 나꼼수 지지자의 토론이 짧게 열린적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그 김규항 자칭팬으로 글을 썼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애니님은 열정적인 나꼼수 팬이십니다. 저는 이제 갓 서른이 된 어리다면 어린 나이이고, 동부에 살며, 그릇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요리라고는 할 시간도 없는,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학생입니다. 한창 쿠킹달력문제로 운영진을 의심할때 운영진 편에서 속풀이 방에 썼던 글입니다. 저는 빠순이가 아닙니다.
http://www.mizville.org/gnu/bbs/board.php?bo_table=miz_talk3&wr_id=156324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D%C7%B9%AB&sop=and
저는 그 사람을 알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 사람의 아픔에 저도 아픕니다. 그 자리, 그 상황에 애니님이 아닌 그 어느누가 있다 하더라도, 저는 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제가 미즈빌 위키피디아를 제안했을때 저보고 참 잔인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 알권리를 위해 그렇게 잔인해져야겠냐고 물으셨습니다. 제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 속을 까보이지 않는 한, 그렇게 생각하는 분의 생각을 제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오해란 이토록 쉽게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다른이에게 이렇게 돌팔매질하고 비웃으면 안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애니님이 이해되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몇번을 간다, 간다 하면서도 쿨하게 가지 못하는 애니님이 이해되지 않았었습니다. 간다는 건 이런 마음인 것이군요. 저를 직접 아는 사람 하나 없어도 5년의 시간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군요. 역시 사람은, 자신이 경험해보기 전에는 정말 다른이의 마음을 알기가 이렇게 힘든 것임을 지금 또 한번 느낍니다.
이제 조금씩 미즈빌이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아 기쁩니다. 더이상 확인가능하지 않은 사실들이 루머로 남아 이곳에서 떠돌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제 미국생활의 작은 휴식처였던 미즈빌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알게된 미즈빌의 많은 현명하고 따뜻한 분들에게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